베니스영화제 위원장 바르베라 ‘할리우드 외면·성평등 후퇴·AI 위협’ 진단

베니스국제영화제 예술감독 알베르토 바르베라가 할리우드의 축제 외면, 성평등 후퇴, AI라는 세 가지 화두를 정면으로 짚었다. 2026년 베니스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변화를 냉정하게 진단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알베르토 바르베라, 그는 누구이며 왜 지금 주목받나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이끄는 예술감독이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예술감독직을 맡으며 베니스영화제를 칸, 베를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영화제’ 반열로 재도약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 영화 비평가 출신으로 토리노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거쳐 베니스로 옮겨온 이후, 그는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프로그래밍 전략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이번 발언은 2026년 베니스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바르베라는 라인업 발표와 함께 영화제 운영 전반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데, 올해는 유독 업계 내부의 구조적 위기를 정면으로 짚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참여 감소, 여성 감독 비중의 정체 또는 후퇴, 그리고 인공지능이 영화 제작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세 가지 축이다.

이 발언이 업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베니스영화제는 오스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킥오프’ 행사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왔고, 그만큼 이곳에서 나오는 진단은 향후 1년간의 영화산업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바르베라의 발언은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라, 전통적 영화제 시스템이 스트리밍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읽힌다.

할리우드의 ‘축제 이탈’ 현상과 배경

바르베라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톱스타들의 베니스 참여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한때 레드카펫을 가득 채웠던 대형 스타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스튜디오들이 대작 영화의 월드 프리미어 장소로 영화제를 선택하는 빈도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스튜디오 참여 감소의 구조적 원인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겹쳐 있다. 우선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파업과 예산 축소 등을 거치며 마케팅 비용 자체를 줄이는 추세다. 해외 영화제 참석은 항공료, 숙박비, 홍보 인력 파견 등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는데, 손익 압박이 커진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또한 배우 및 스태프 조합과의 계약 조건, 스타들의 스케줄 관리 등도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강세와 전통 영화제의 위축

동시에 스트리밍 플랫폼의 존재감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극장 개봉보다 자사 플랫폼 공개에 무게를 두면서도, 영화제 데뷔를 통한 ‘오스카 레이스’ 진입 전략은 꾸준히 활용해왔다. 이 때문에 전통적 스튜디오 대작은 줄어드는 반면, 스트리밍 오리지널 작품이나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이 그 빈자리를 채우는 양상이 나타난다. 바르베라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베니스가 영화적 완성도와 작가주의를 중심에 둔 프로그래밍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할리우드의 화려함이 줄어드는 만큼 영화제의 대중적 화제성 확보는 앞으로도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영화제 내 성평등(젠더 패리티) 후퇴 논란

바르베라가 두 번째로 짚은 문제는 경쟁 부문 내 여성 감독의 비중이다. 지난 몇 년간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주요 영화제들은 ‘젠더 패리티 서약(50/50 by 2020 등)’에 동참하며 여성 감독의 작품 비중을 높이겠다고 공언해왔다. 실제로 한때는 경쟁 부문 내 여성 감독 비율이 눈에 띄게 상승하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라인업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조짐이 관측된다는 것이 바르베라의 진단이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의 경쟁 부문 진출 편수가 이전 대비 줄어든 해가 있었고, 이는 업계 전반에서 코로나19 이후 제작 편수 자체가 줄어든 영향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는 정확한 통계 수치가 공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추정으로 봐야 한다.

바르베라는 이러한 후퇴 흐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도, 영화제 선정 기준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론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인위적인 쿼터제보다는 여성 감독들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산업 구조 전반이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향후 개선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 목표보다 제작 지원 프로그램 확대 등 간접적인 방안이 언급된 것으로 파악된다.

AI가 영화제에 던진 질문

세 번째 화두는 인공지능이다. 생성형 AI 기술이 영화 제작 전 과정에 스며들면서, 베니스를 비롯한 국제영화제들은 ‘AI로 만들어졌거나 AI의 도움을 크게 받은 작품을 공식 경쟁 부문에 포함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바르베라는 AI 활용 자체를 무조건 배제하기보다는, 창작자의 예술적 비전과 통제력이 얼마나 유지되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의 시각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말해 AI가 도구로 활용된 작품과, AI가 창작의 핵심 주체가 되어버린 작품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작권 귀속 문제, 배우·스태프의 초상권과 목소리 사용에 대한 윤리적 쟁점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다른 국제영화제들과 비교해 보면,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역시 AI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어느 영화제도 AI 활용 여부를 명시적으로 규제하는 공식 규정을 전면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은 상태이며, 각 영화제는 개별 작품 심사 과정에서 사안별로 판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베니스가 향후 AI 관련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제시할지, 아니면 업계 전체의 합의를 기다릴지가 관전 포인트로 남아 있다.

종합 정리: 베니스영화제가 나아갈 방향

할리우드의 축제 이탈, 성평등 후퇴, AI라는 세 가지 이슈는 얼핏 별개로 보이지만 공통된 시사점을 안고 있다. 바로 전통적인 영화제 시스템이 산업 구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트리밍의 부상, 제작 편수 감소, 기술 혁신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베니스영화제는 예술성과 대중성,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점을 다시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26년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이러한 진단이 실제 라인업과 운영 방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할리우드 대작의 참여 규모, 경쟁 부문 내 여성 감독 비중의 회복 여부, 그리고 AI 관련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단의 태도 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내 독자 입장에서도 이번 진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 영화산업이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되고, 성평등 이슈와 AI 윤리가 창작 현장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는 흐름은 한국 영화·콘텐츠 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베니스영화제라는 세계적 창구를 통해 드러난 이 세 가지 위기는,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될 것인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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